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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1 (토)
영암어란은 귀한 음식인 만큼 먹는 방법도 까다롭다. 가능하면 얇게 썰어야 하고 썰 때도 칼을 불에 달궈 기름이 약간 녹아 나도록 해야 맛이 좋다.
이런 음식 호사는 누가 누리는 걸까. “우리야 모르지. 주로 백화점에 납품하고, 유명 한정식집에서도 사 가. 지난번 이명박 대통령이 설렁탕 먹으면서 조사받았다는 그 한정식집도 우리 어란이 들어가. 개인이 전화로 주문하면 우송도 해주지. 분명한 건 서민 음식은 아니라는 거야. 맛도 알고 멋도 아는 사람이 음미하며 먹는 음식이지.”
어란을 주안상에나 어울리는 음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옛날 말라리아가 극심했던 여름철에 고열로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찬물에 밥을 말고 어란을 한쪽 얹어 입에 넣어 주면 밥을 삼켰다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어란은 고단백에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이다.
“숭어는 일반적으로 암놈 하나에 수놈 4~5마리로 일처다부제로 알려져 있어요. 그 때문인지 산란 직전 암숭어를 잡아 보면 알집이 아주 크고 단단해요. 영양의 보고지요. 반면 산란을 마친 숭어는 속이 텅 빈 껍질만 남고 살에 기름이 몽땅 빠져나가 ‘여름 숭어는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어요.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경우 여자를 취하기 전에는 꼭 어란을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온다고 해요.” 옆에 있던 큰아들 박승옥 씨가 들려준 이야기다.
“어란은 아무나 못 해. 젊은 사람은 성질이 급해서 못하고 돈 많은 사람은 힘이 드니까 쳐다도 안 봐.”
전통음식인 어란이 자기 대에서 맥이 끊기면 어쩌나 걱정이던 할머니는 얼마 전부터 한시름 놓았다. 며느리와 큰딸이 가업을 잇겠다고 나선 것. 그렇게 되면 4대째 영암어란의 전통을 잇는 셈이다.
한참 일손이 바쁜 철에는 광주에서 큰딸과 아들 내외가 내려오지만 평소에는 영암의 구옥에서 할머니 혼자 생활한다. 세끼 밥 차려먹고, 심심하면 마실 가고, 붓글씨 쓰는 취미 생활도 하며 너끈히 혼자 지낸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목소리도 정정하고 몸놀림도 팔순 노인답지 않게 재바르다. “할머니, 얼굴이 어쩜 그렇게 주름도 없이 고우세요?”라고 여쭈니 할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신다. “어란을 먹으니까 그렇제.”